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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배운 감사 — 수확의 기쁨과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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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주작은갤러리 댓글 0건 조회 95회 작성일 26-09-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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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뜨거웠던 8월도 어느덧 중턱을 넘어섰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 아래 씨앗 하나씩 뿌리며 시작했던 농사가 이제 결실의 계절을 맞고 있다. 4월부터 5월 초순까지 정성껏 파종했던 채소와 야채들은 저마다 제 몫의 시간을 다하고,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며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먹거리가 되었다.

농촌의 여름은 참으로 정직하다.
씨앗을 뿌린 만큼 자라고, 땀을 흘린 만큼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결실 뒤에는 사람의 수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햇빛과 비와 바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느님의 손길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수확의 계절이 되면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여름내 밭을 지키던 노란 참외와 길고 둥근 수박,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오이와 붉게 익어가던 토마토도 이제 하나둘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밭 한구석에 심어놓고 미처 돌보지 못했던 호박은 무성한 풀밭 속에서도 묵묵히 자라 어느새 크고 둥글고 탐스럽게 익어 있다.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은 곳에서도 생명은 자신의 시간을 다하며 열매를 맺는다. 마치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진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마태오 복음 6,26)

그 말씀을 떠올리면 농부의 마음에는 감사가 먼저 피어난다.
내가 애써 씨를 뿌렸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고, 내가 땀 흘려 가꾼 밭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 또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지난 19일에는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고구마 밭에 둘러앉아 우리 형제들과 함께 고구마 순을 뜯고 다듬었다. 손길은 분주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웃음꽃을 피우며 자연이 주는 고마운 선물을 함께 손질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고구마 순 하나를 다듬으면서도 마음속에는 지나온 시간이 스쳐 갔다.
씨앗을 뿌리던 봄날의 모습, 뜨거운 햇볕 아래 밭을 오가며 흘렸던 땀방울, 잡초를 뽑고 작물을 돌보던 수고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힘들고 일손이 부족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수확의 기쁨 앞에서는 그 모든 고생이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수확물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께서 주신 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과 형제들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오 복음 10,8)

농사의 기쁨도 그러한 것 같다.
땀 흘려 거둔 것을 나눌 때 비로소 수확은 완성된다. 밭에서 거둔 고구마 한 바구니, 호박 하나, 채소 한 줌이 누군가의 밥상에 올라 따뜻한 한 끼가 될 때, 그 안에는 농부의 땀뿐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까지 함께 담기는 것이 아닐까.

이제 여름 농사는 서서히 마무리를 향하고 있다.
밭을 다시 갈아엎고 김장 무와 배추를 파종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여름 작물을 거둔 밭에는 다시 새로운 씨앗이 뿌려질 것이다.

씨앗 하나가 땅에 묻히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된다.
농부는 오늘 씨를 뿌리면서 내일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희망을 배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도 농사와 참 많이 닮았다.
젊은 날에는 씨앗을 뿌리고, 중년에는 가꾸며, 세월이 흐르면 하나씩 열매를 거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거둔 열매를 누군가와 나누며 살아온 시간을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수확의 계절은 단순히 농작물을 거두는 계절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계절이다.

뜨거운 햇볕도, 거센 비바람도, 부족했던 일손도 이제는 모두 감사의 기억으로 남는다. 밭에서 흘린 땀방울 하나하나가 오늘의 풍요를 만들었고, 그 풍요를 형제들과 손님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농사는 이미 충분히 풍년이다.

나는 오늘도 밭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손을 주시고,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기쁨을 주시며,
무엇보다 그 열매를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거둔 것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당신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 삶의 남은 계절에도
좋은 씨앗을 뿌리고,
따뜻한 열매를 맺으며,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이 오면 밭은 다시 풍요로운 결실로 물들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풍년은 밭에 열매가 많이 맺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를 함께 기뻐하고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있다는 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형제들과 함께 웃으며 밭을 일군다.
땀으로 일군 밭에서 감사가 자라고, 나눔으로 거둔 수확에서 사랑이 익어간다.

그것이 내가 농사에서 배운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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